2020년 4월.
군대도 전역하고 복학도 하겠다,
꼭 해보고 싶던 자취를 시작했었다.
사실 성인이 된 뒤로 항상 자취를 하고 싶었는데
부모님의 엄청난 반대로 인해서
자취는 직장을 다닌 뒤에나 하겠다고 생각했었다.
하지만 군대를 전역하면서
1학년 때 왕복 4시간이나 통학하는 것 때문에
너무 힘들었다고 하니까
자취를 허락해주셔서
얼결에 빨리 시작할 수 있었다.
그 뒤로는 부동산 어플을 하루 이틀 정도 찾아봤었다.
사실 근데 부동산 어플 특히, 직방이나 다방은
허위 매물이 많다는 소리를 줄곧 들어서
그냥 킬링 타임 용으로만 살펴보았다.
그 후, 그 주 주말에 바로 아빠랑 같이
부동산 발품을 팔기 위해
무작정 학교 주변 공인중개사 사무소로 갔었다.
그리고 매물 하나만 보고 바로 빠꾸 했다.
애초에 학교가 있는 그 동네가 비쌀뿐더러
나는 전세로 계약하려고 했는데
전세 매물도 잘 없는 곳이고
개강 이후에 찾아간 것이라
아예 매물 자체라 거의 없다고 했다.
심지어 내가 본 그 매물은
가격은 드럽게 비싼데
뭔가 벌레 나올 것처럼 생겨서
진짜 정이 안 갔던 걸로 기억한다.
그 이후로는 자취의 꽃이라고 불리는
서울대입구역 쪽으로 갔다.
관악구가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
학교까지 직빵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
솔직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.
거기에서도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찾아갔는데
학교 주변의 반값인 매물이
세 개나 있어서 전부 확인했었다.
지금까지 살았던 평범하고 작은 방,
방이 삼각형이라 완전 불편해 보이는 방,
옥탑방 이렇게 세 곳을 돌아다니면서 확인했다.
사실 셋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.
지금까지 살았던 방은 엘리베이터가 있고
비교적 신축인 것과 풀옵션이었던 게 장점이었지만
너무 좁은 것이 문제였고
삼각형 방은 좁은 것도 문제고
생긴 것도 이상해서 도저히 침대랑 책상을
같이 둘 공간이 안 나올 것 같아 바로 패스했다.
옥탑방은 상대적으로 방이 넓었지만
리모델링이 안 되어있는 구닥다리 방에
5층인가 그랬는데도
엘리베이터가 없었다는 큰 문제가 있었다.
사실 나는 다른 공인중개사 사무소도
찾아다니면서 좀 더 발품을 팔고 싶었는데
아빠가 그냥 빨리 정하고 가자고 해서
그냥 지금까지 살았던 방을 결정했다.
하늘도 무심하지,
방을 계약하고 나니까
코로나로 인한 전면 비대면으로
수업 방침이 변경되어서
학교에 갈 일이 줄어들었다.
비대면이면 사실 굳이
자취방에서 지낼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
굳이 거기서 외롭게 있는 것보다는
그냥 원래 살던 동네에서 살다가 시험 기간에만
자취방으로 가서 지내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.
사실 방이 넓었으면 자취방에서 쭉 지낼 텐데
자취방이 진짜 개 작아서
시험기간에 한 달 정도 그 방에서 지내니까
정신병이 올 것 같아서
도저히 못 살겠다고 생각했었다.
심지어 가장 문제는 풀옵션이라
책상이 기본적으로 제공됐는데
무슨 크기가 너무 작아서 24인치 모니터를 놔두면
자리가 꽉 찼다.
하지만 새 책상을 구매하자니
딱히 놔둘 공간이 없어서 바로 포기했었다.
추가적으로 책상에 컴퓨터 의자가
들어갈 공간이 없어 보여서
의자가 들어갈 공간 치수를 재면서
쿠팡에서 크기를 고려하면서 의자를 샀던 기억이 난다.
그렇게 크기가 딱 맞다고 생각하고 구매한 의자도
양옆 손잡이 때문에 들어가지가 않아서
손잡이를 망치로 때려서 부셨지만
개 같은 의자 다리가 너무 길어서 책상에 끝까지 안 들어갔다.
침대도 그리고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
삼단 매트리스를 잘 때 펼치고
일어나면 접어서 위에 이불을 올려뒀는데
무슨 군 생활을 다시 한 느낌이었다.
빨래도 문제였다.
건조대를 놔둘 공간이 없어서
벽걸이 건조대를 샀는데 옷을 걸어 놓으면
온 방이 빨래로 가득 차서 서있지 못하고 기어 다녔다.
뭐 이렇게 좁은 방에 혼자서 사니까,
자취 로망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
앞서 말했듯이 정신병 걸리기에 딱 좋아서
사실 계속 있기 꺼려졌다.
아니 본가에 있으면 정상인데
그 방에서 한 3주 정도 살고 있으면
갑자기 우울해지고 답답해지고 정신 나갈 것 같고
완전 집돌이인데도 밤에 자주 산책을 나간 것을 보면
존나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.
그리고 또 하나의 큰 문제는
학교랑 자취방 간의 거리가 좀 있다는 것이다.
방을 계약할 때는
학교로 바로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어서 한 거였지만,
지금 와서 생각해보니
결국 대중교통을 타야 하면
집에서 통학하는 거랑 시간 말고는 차이점이
뭔지를 모르겠다.
자취방에서 학교에 갈 때
30분 전에 출발했는데
본가에서 학교 갈 때 1시간 20분 정도
걸리는 것을 생각하면
굳이 자취를 하는 것에 대한 메리트가 있나 싶다.
결국 학교에 있다가 피곤하거나 공강이 있을 때
집으로 못 돌아가는 것은 동일하니까...
그나마 코로나 덕분에
비대면으로만 수업해서 다행이지
대면 수업이 있었으면 어땠을지
상상조차 안 간다.
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2년 내내 관리비는 내지만
시험 기간을 제외하고는 그 방에 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.
실거주 기간이 2년 중 6~7 달인 것 생각하면
진짜 관리비를 하늘에 공중분해한 것 같아
ㅈ같기는 하지만
자취방에서 계속 지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
후회하지는 않는다.
뭐.. 그랬던 방도 어느새 2년이 지나서
오늘 짐을 전부 빼고 왔다.
진짜 정 하나 안 들었던 방이지만
뭔가 오늘 짐을 전부 치우니까
섭섭한 감정이 들긴 했다.
근데 이게 마지막이라 그런 건지,
아니면 돈이 아까워서 그런 건지,
그것도 아니면 순식간에 2년이 지나가서 그런 건지
나는 잘 모르겠다.
그래도 앞으로의 내 인생 중에
그 방에서 지낼 일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
허망하기도 하다.
내가 진짜 정을 잘 주는 타입인데
이 방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정을 많이 준 것 같다.
다음에 취업해서 자취를 또 하게 되면
그때는 진짜 비교적으로 살만한 크기에
듀얼 모니터를 놔둬도 될 만한 크기의 책상
이 부분을 많이 고려해야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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